철학자라든지, 사상가라든지, 또는 예술가 과학자 등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위인들은
산책을 매우 매우 참 참 즐겨 했다는데 말이다.
걷고 또 걸으면서 사색의 시간을 가지는 것 말이지.
그런데 그러다가 중간에 똥이 마려우면
대체 어떻게들 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생각해보라, 니체가 뒷동산을 걸으며 사색하고 있다.
예수가 고난의 사막을 걸으며 사색하고 있다.
부처가,
아인슈타인이,
퀴리 부인이,
전혜린이,
오에 겐자부로가,
(왜 이런 리스트가 나오는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길을 걸으며 사색하다가
똥이 마려우면 어떡하는가?
나는 그게 참 궁금하다.
적어도 집으로 도로 뛰어가지는 않겠지.
집으로 뛰어가기엔 너무 먼 거리까지 산책을 나왔다고 가정하고.
여튼, 눈치 챘겠지만,
빌어먹을 대도시에 화장실 찾기가 그리 힘들더란 말이다.
나는 그랜저 본네트(맞나?) 위에 올라가서 똥 눈 적도 있다.
옛날 일이다.
나는 어느새 걷기의 대가가 되어 있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나는 걷기의 대가다.
요상하게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걷기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어느 바보가 그런 분야의 자신감을 가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걷기의 대가로 자랄 가능성이 농후했음을
그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
집에 있으면 방에 틀어박혀서 종이에다
보지 자지 유방 기계 둘리 뭐 이런 거 그리고 있으니까
세컨머더가 유 빼드 보이, 겟 더 뻑 아웃 오브 히어!
플레이 위드 애니 어더 보이즈! 메이크 프렌즈!
뭐 이러니까 나는 기어 나가서
산 속을 마구 마구 걸었다.
온 도시를 마구 마구 걸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외계에서 지구로 떨어진 소년이라 생각했다.
혼자 산 속에서 뒹굴고 쓰러지고 녹색 피를 토하고
초능력을 사용했고 고향별을 그리워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영화감독이었고 영화배우였다.
나의 예술세계는 그 때 이미 죄다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똥은 집에 돌아와서 누었다.
나는 어느 정도 깨끗한 화장실이 아니면 똥을 못 누는
그런 조신한 소년이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학교에서 똥을 눠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아침 자습시간에 주로 화장실에서 똥을 누었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으며 똥을 누었다.
그거 똥 누기에 담배보다 좋은 책이다. 알고 있는가?
나도 똥 누면서 읽을 때 가슴을 후벼 파는 시를 쓰고 싶다.
대학에서 똥 누는 건 뭐, 화장실이 어디든 있었으니까.
나는 내 여자친구 방에서 똥을 많이 누었다.
변기 커버를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나가는 센스도
신경 써서 발휘했다고 기억한다.
그 시절의 변기는 행복한 변기였다.
사이좋게 여자친구와 내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똥을 누는 그런 변기였다.
나는 야외에서,
그러니까 화장실이 아닌 공간에 똥 누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군인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싫어도 할 수 없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첩첩산중은
죄다 군인들의 똥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 속에서 똥 누는 정취는, 실로 대단하다.
대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건 야호, 소리 지르고
뭐 소나무 숲에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산 속에서 똥 한번만 눠보면 느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화장실이 아닌 야외에서 똥 누는 게 싫다.
인공위성에서도 내 똥이 보일 거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경기도 양양,
충북 괴산,
경북 영천,
강원도 철원군,
등지에 분포되어있는 나의 똥을 생각하면.
아무리 걷기와 사색의 대가라 하더라도,
똥이 급히 마려우면 사색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왜 똥 타령인지 모르겠다.
암튼 나는 걷기의 대가.
이젠 산책을 통한 사색이 지겨워 죽겠다.
홀로 걷던 그날 밤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길 잃은 개들과 고양이들이
나와 같은 눈빛으로 교감하던,
그날 밤들을.
(minihom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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